결론부터 말하자면 소문대로 엘지트윈스는 콩가루 집안이란걸 확인했다는 점.
만 19살 어린 투수가 핀치에 몰려 있는 상황에서 고참이란 선수들 누구도 나서서 안정시켜주려고 조차 않는다.
1점차 뒤진 8회 원아웃 상황에서 만 19살 어린 포수를 대신해 나온 베테랑 선수는 쓰리볼 이후 들어오는 한가운데 공을 안치고 다음 볼을 골라 볼넷으로 출루. 대타로 바뀌어 덕아웃으로 들어온다. 나름 장타력이 있는 선수를 이 상황에서 감독이 올렸을 때는 한방 때리라는 의미일텐데 .. 이 장면 보면서 어처구니가...
현재 엘지의 베테랑 선수들. 정말 할 말을 잃게 만든다. 정말 정말 정말 정말 야구 못한다. 경기력 문제가 아니라 분명히 프로선수로서의 의식이란 것이 있는지 조차 의심스럽다. 그런 선수들을 프랜차이즈 스타라고 믿고 응원하는 팬들이 참 처량하다고 느낀 경기. 하긴 프로 7년차 선수가 아직도 유망주 소릴 듣고 있으니..

엘지의 리빌딩은 과감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필라델피아 필리스 불펜진들을 다룬 다큐멘터리 'The Pen'이 6화로 종료되었다.
영어울렁증환자가 자막도 없이..그것도 다큐멘터리를 보면서도 꽤 즐겁게 보았다. 메이저리그 구장 풍경, 락커룸 풍경등 볼거리도 충분했고 (그 많은 코멘트들을 이해하면서 보았다면 물론 더 좋았겠지만 야구팬이라면) 사실 말은 못알아듣더라도 대충 무슨 상황인가는 파악이 되기 때문에 재미있게 볼 수 있을거란 생각이 든다.
[인상깊었던 장면]
1. 햅과 박찬호 - 스프링캠프서 선발 경쟁을 벌이던 두 선수의 명암이 엇갈리던 부분. 필리스 GM이 생각보다 훨 젊었다.
2. 버락 오바마 - 올스타게임 시구. 시카고 화이트삭스의 팬임을 입증하듯 시삭스 재킷을 입고 시구. 락커룸에서 선수들과 함께 (팬으로서의) 진정성이 보이던 모습들. 중계석에서 캐스터, 해설자와 함께 중계하던 모습.
3. 찰리 매뉴얼 - 필라델피아 필리스 감독. 만 65세의 노감독이 올스타 게임 감독 소개시 90kg의 몸으로 진지하게 운동장으로 뛰어나오던 모습.
4. 불펜 호출 - 덕아웃과 연결된 직통 전화로 릴리프 호출시 불펜코치가 올려보낼 선수를 별명으로 부르던 모습. 박찬호는 '챈'
5. 박리혜 - 재일교포라 들었는데 박찬호보다도 좋게들리던 발음. 항상 그렇게 먹는지 어쩐지는 모르겠지만 고급 식당서 먹는듯한 갖가지 요리들을 먹으며 'All Mine~'을 외치던 Chan. I ENVY YOU!!!!!!!!!!!

클리블랜드 에이스 클리프리까지 가세한 필리스. 꼭 월드시리즈 진출해서 박찬호 선수도 챔피언 반지를 보유하게 되길 빌어본다.

불펜의 유래에는 여러가지 설이 있는데 the pen에도 언급이 된다. 그 중 한 장면.
담배회사인 불 더햄(Bull Durham)의 광고판에서 유래됐다는 설이 있는데..(그림에서는 스테이크 식당...) 
'야구란 무엇인가'의 저자 레너드 코페트에 따르면 왜 불펜이란 명칭이 붙었는가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설이 분분하지만 그 어느 것도 신빙성은 별로 없다고 한다. 그의 견해에 따르면 어원이야 어찌됐건 지금도 그렇게 부르는데는 일리가 있다고 한다. 거기가 기자실을 제외하곤 야구장안에서 가장 '허풍떨기(bull)'가 심한 곳이기 때문이다.
2009 한국 프로야구 올스타전 팬투표 결과가 나왔다.
일본 야구 명예의 전당에 전시되어있는 1982년 한국 프로야구 최초의 올스타전 기념구.
삼미 수퍼스타즈의 팀엠블럼이 보인다.

                          
     하리모토 이사오 (한국명 장훈
     1940년 6월 19일, 일본 히로시마현 출신. 나미와상고에서 59년에 도에이 플라이어즈 입단. 1년차부터 주전자리를 꿰차면서 리그 신인왕에 올랐다. 2년차인 60년 시즌 처음 타율 3할을 기록, 3년차시즌에 처음 리그 수위타자를 차지했다. 67년부터 4년 연속 수위타자에 오른것을 포함 통산 7번 리그 수위타자에 올랐다. 팀 해체와 인수 속에서 팀을 지키다 결국 76년 요미우리 자이언츠 이적한다. 80년 시즌 롯데 유니폼을 입고 전인미답의 통산 3000안타를 달성했다. 81년 현역은퇴. 23년간의 통산성적은 2752시합 출장, 타율 .319, 안타 3085개, 홈런 504개, 타점 1676점. 90년에 일본 프로야구 명예의 전당 헌액에 헌액되었다.  현재 야구평론가로서 활동 중.

SEGA에서 운영 중인 '프로야구팀을 만들자! online2'(팀육성시뮬레이션 게임으로 부분 유료정책으로 운영되고 있다. http://www.yakyutsuku-online.com) 에서는 한 달에 한 번 야구인들에 대한 인터뷰 기사를 올리는데 이번달은 장훈의 인터뷰이다.
다음은 발췌내용.(물론 발번역)

SEGA(이하 S로 표기) : 장훈씨는 나미와 상고를 졸업하고 바로 도에이 플라이어즈에 입단하셨습니다.

장훈(이하 장으로 표기):  10구단정도로 부터 제의를 받았었지만 마지막으로 남은 구단이 도에이하고 주니치였습니다. 형님은 주니치쪽으로 기울었었죠. 스카웃하시던 분이 훌륭하신 분이셔서 ' 이 구단이라면 동생을 맡길수 있겠다' 라고 생각하셨더랬죠. 실제로 계약금도 주니치가 세배 정도 더 높았었고. 그걸 알았으면 나도 주니치에 들어갔을텐데(웃음). 거기다 당시에 나는 센트럴 리그하고 퍼시픽 리그하고 그렇게 인기 차이가 있는줄도 몰랐었구요. 하지만 어린맘에 '도꾜에 가고싶다'라는 동경이 있었습니다. 또 당시의 이와모토 감독이 같은 히로시마 출신이기도 했고 같은 나미와 상고출신의 야마모토 선배도 있었고. 결국엔 내가 도에이를 선택했습니다. 

S : 고졸로서 갑자기 프로행을 결행하신 자신감은 무엇이었나요?

: 걱정했었던 부분이 힘하고 스피드쪽이었는데, 기술적인 부분은 프로에서 배우면 된다고 생각했었죠. 58 년 가을에 구단의 추계연습에 불려가서 거기서 10일을 연습했는데 내가 체력만은 괜찮구나 해서 그렇다면 할 수 있겠다라는 희망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당시 도에이 타격코치셨던 마쯔모토씨로부터 춘계캠프에서 기술을 여러가지 배우면서 개막전 즈음에는 어느 정도 자신이 붙어있는 상태였습니다.
 
S : 역시 급이 틀리시네요.
 
: 그래도 설마, 개막전부터 나설 수 있으리라곤. 6번 좌익수로 출장했는데 삼구 삼진, 수비서도 바람방향을 잘못 읽어서 만세부르고 (웃음). 그래서 '내일부터는 2군인가'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다음 날도 출장하   라고 하는거에요. 거기서 용기를 냈고 덕분에 결과도 나온거죠.  

S : 도에이라고 하면 '코마자와(도쿄의 지역명)의 난폭자들'이라는..

: 모두 그렇게 말하지만 선수들이 난폭했다거나 그런 것은 아니었습니다. 확실히 모두 젊었었기때문에 짖궃은 장난도 치고 그랬지만요. (웃음) 그것보다는 만년 하위팀이지만 상위팀에 강한 면이 있었기때문에 붙여진것이죠. 그런 팀에 자이언츠에서 미즈하라 시게루 감독( 주)1925, 26, 27 연속 자이언츠를 일본시리즈 우승으로 이끌었다.)이 부임했습니다. 설마?! 하고 모두가 생각했었죠.  

S : 61년에는 아깝게도 리그 2위. 하지만 다음해에는 일본 시리즈 우승을 했습니다.

: 그 당시는 제가 스무살 무렵이었기 때문에 생각하는 야구를 할 수 있는 레벨이 아니었고 사인대로 무모하게 할 수 밖에 없었죠. 하지만 그러는 동안 점점 감독님의 지시가 무엇을 뜻하는지 알아가게 됐습니다. 그때의 도에이는 한 방도 있었고 20승 투수도 나왔었죠. 초반에 3점정도는 보통 리드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상대방은 여유인거에요. 우리가 곧 실수를 할거란걸 알고 있기 때문이었죠. 그래서 도에이는 만년 5위팀. 집중하면 강하지만 무너지면 위험한, 그런 팀이었습니다.

S : 그걸 미즈하라 감독이 바꿔놓았던 거군요.

: 일본시리즈 우승을 하고 미즈하라 감독은 ' 앞으로 10년이 중요하다'고 항상 말했었습니다. 하지만 역시 구단의 이해가 없었었죠. 구상한 보강도 이뤄지지 않았고 영화 업계(도에이는 일본 전후 최대 영화사)도 점점 불황이 되어 결국은 미즈하라 감독도 떠났죠. 

S
: 그리고 팀은 닛타쿠, 일본 햄으로 팔렸습니다.

:  새로운 구단이 되면 물갈이가 되는건 당연한 거죠. 74년을 마지막으로  오오스기, 오오시타, 백인천이 이적하고 남은것은 저였습니다. 역시 기분은 엉망이었죠. 그래서 75년 시즌 오프 때 '필요없다면 내보내주십시오'라고 요청했더니 사장이었던 미하라씨가 '원하는 구단에 보내주겠다'고. 남자다웠던 분이셨죠. FA같은거도 없던 시대에 그렇게 얘기해주셨죠. 

S : 그래서 자이언츠로.....

: 그게 사실은 난 한신으로 가려고 했습니다. 당시 한신감독 요시다씨가 불러주셨었죠. 기뻤죠. 그래서 완전히 오사카에 갈 작정으로 준비도 해두었습니다. 살 집도 준비해놓았으니. 

S : 그런 사연이 있었습니까?

: 그것이 돌연 어떤 분을 통해서 자이언츠에 오지않겠나 하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아주 놀랐습니다. 강함에의 동경도 있었고 저도 자이언츠의 팬이었기때문에. 거기다 이미 자이언츠 입단이 확정된듯 얘기를 하기때문에 시간을 주십시오라고 하고선 급하게 요시다감독에게 연락을 했죠. 그랬더니 요시다 감독은 싫은말 한마디 없이 ' 하리, 좋은 이야기 아니냐. 같은 도꾜기도 하고, 자이언츠로 가거라'라고.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S : 그런 일이 있었다는것은....

: 지금까지도 요시다씨와 그 이야기를 합니다. '만일 그 당시에 하리가 한신으로 왔으면 재밌었을 텐데'라며 (웃음)

S :  역사가 바뀔 수도 있었다는 거군요. 그리고 자이언츠, 롯데에서 플레이 하시고 3085안타라는 금자탑을 세우셨습니다.

: 저 스스로도 잘 때려냈었다고는 생각하지만, 그게 매년 안타가 나오기전까지는 불안했었습니다. 그 원동력은 역시 헝그리 정신이었을까나. 또 하나 항상 생각했던것이 '자신을 의심하는 것'이었습니다. 4안타를 쳤어도 그건 오늘 상대 투수의 컨디션이 안 좋았던 것일 뿐 안타를 치는게 당연한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내일도 똑같이 안타를 칠 수 있을거라고는 생각하지않고 해나갔기 때문에 계속 해서 안타를 칠 수 있었던 거죠.

S : 그럼 '프로야구팀을 만들자!'에서 부활한 장훈 선수가 대전하고 싶은 현역 선수를 꼽으신다면?

: 역시 다르빗슈(닛뽄햄), 이와쿠마(라쿠텐), 와쿠이(세이부), 키시 다카유키(세이부). 그들과는 대전해보고 싶기도 하고 내 팀에도 넣고 싶네요 (웃음). 그리고 역시 좋은 포수가 있다면 우승을 노려볼 만한 팀이 될 수 있겠죠. 지금이라면 사토 자키(롯데 포수), 호소카와( 세이부 포수), 그리고 성장하고 있구나하고 생각하고 있는 히로시마의 이시하라겠죠.

S : 그럼 그 배터리들과 장훈선수는 어떤 대결을 펼칠까요?

: 프로로서 저는 역시 중거리 타자입니다. 광각타법이라고 불렸습니다만 실제 좌우 골고루 때려냈었습니다. 투수가 여러군데로 던졌으니까요. 거기에 거스르지  않고 결대로 친 결과입니다. 따라서 위의 선수들이 상대라도 힘껏 잡아당겨치는 것보다 코스에 맞춰서 확실히 맞춰보고 싶네요. 현역시절엔 다리에도 자신이 있어서 2루타, 3루타를 많이 쳤었죠.

** 인터뷰 내용 중 굵은 글씨의 말은 LG트윈스 선수들과 프런트에 전하고 싶은 이야기입니다 ㅠㅠ


   NPB(일본프로야구) 2009 올스타 명단 발표(7/6)
프로야구 마쯔다 올스타게임 운영위원회는 6일, 올스타 전에 출장할 감독 추천선수들을 발표, 팬 투표와 선수간 투표에 의해 선출된 멤버를 포함한 퍼시픽, 센트럴 양 리그 각 28명의 진용이 결정되었다. -교도 통신


   센트럴 리그의 경우 야쿠르트의 임창용 선수가 팬투표에 의해 올스타에 선정되었다는 소식이 큰 뉴스가 되었었다. 이번 팬 투표에 의한 선수 명단을 살펴보면 재미있는 점은 요미우리 자이언츠나 한신 타이거즈의 선수들이 아니라 히로시마 카프의 선수들이 5명이나 선출되었다는 점이다.
일본 프로야구 판에서 가장 팬들의 충성도가 높고 전국적인 인기도에서도 이제 요미우리를 앞섰다고 평가받던 한신 타이거즈는 올스타 명단에 단 한명, 그것도 감독추천으로 마무리 후지카와 큐지가 이름을 올렸을 뿐이다. 하지만 히로시마 카프도 한신 타이거즈에 뒤떨어지지 않는 팬들의 충성도를 자랑하는 구단이다.
(이젠 새로운 구장으로 이전했지만) 원폭 돔 바로 건너편에 위치한 히로시마 시민구장은 히로시마의 원폭 돔과 함께 히로시마의 상징이기도 했다. - 시민구장 보기 -

   히로시마 도요 카프는 일본내 다른 구단과는 틀리게 시민구단으로서 출발하였다.( 경영은 마쯔다 가문의 족벌운영이지만 마쯔다 그룹의 경영과는 분리되어있다고 한다.) 팀명인 Carp는 잉어의 영어명으로서 히로시마 시를 가로지르는 오오타가와(일급수다!)가 잉어의 산지로 유명했고 히로시마 성(임진왜란 당시 왜군의 후방기지 역할을 했다)의 별칭인 鯉城(리죠우-잉어성)에서 착안되었다고 한다. 잉어는 용이되어 승천하는 출세어로서 당시 원폭피해로 피폐한 히로시마에서 탄생한 만큼 히로시마의 부흥을 바라는 소망이 들어가있는 명칭으로 전해지고 있다. - 日本語Wikipedia

   1984 시즌에 올린 75승이 팀 시즌 최다승으로 센트럴리그 팀 중 유일한 최다승이 80승미만인 구단이라는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역사적으로 강팀은 아니었지만(퍼펙트 게임 3회, 노히트 노런 9회를 당해 일본프로야구 최다기록) 1979년과 1980년 일본시리즈 2연패를 하던 시절도 있었다.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져있는 재일동포 야구선수 중 가네모토 선수도 히로시마 카프 출신. 현재의 감독은 구단 사상 두번째 외국인 감독으로 마틴 브라운이 2006년부터 지휘봉을 잡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 프로야구에서도 많이 활용되고 있는 선수별 응원가를 최초로 만든것도 히로시마 카프의 팬들이었다. ( 히로시마 카프의 전설인 야마모토 코지를 응원하기 위해 만든 응원가 ) 관중 모두가 참여하는 새로운 응원문화를 만들어냈던 히로시마 카프의 팬들. 팀의 성적과는 상관없이 열정적으로 응원하는 팬을 가진 히로시마 카프는 일본 프로야구의 명문팀이라고 할 수 있겠다.
 

시합 시작 두시간전.. 약 40분간 선수들의 배팅 연습을 지켜볼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다. 선착순.. 입장에 있어 아이들과 가족입장객을 배려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나고야 돔구장 천정
공기정화시스템.
가까이서 홈팀의 연습장면을 지켜볼 수 있다.


시합 전.. 휴식을 취하고 있는 카메라맨

주니치 오치아이 감독.
이날 3번 타순에 우익수로 기용된 이병규선수.
배팅연습을 하러나오는 타이론 우즈와 담소.. 백넷뒤에서 연습을 지켜보던 주니치팬들은 이병규 선수의 영어실력을 칭송하고...(한국말로 대화중)
이제 원정팀 히로시마 선수들이 나와서 몸을 풀기 시작.

경기 식전 행사모습.
3층서 바라본 1층 모습.
VIP석 중 하나인 2층 좌석들.
통로 풍경.
흡연실이 실내에 위치.
역시나 다양한 이벤트 유치중인 나고야돔. 나고야 돔 내에서 벌어지는 릴레이 마라톤경기
경기장 내에 입장시 가지고 온 음료수는 저 컵에 옮겨담아야 한다.
경기 시작. 수비위치로 들어가는 이병규 선수.

유치원에서 단체관람..



깃발을 흔드는 것도 규칙과 절도가 생명..


배팅헬멧을 쓰고 다니던 주니치 팬.
일본 돔 투어 마지막.(삿포로 돔은 예산 부족 관계로 가보지 못했다.) 일본 프로야구 주니치 드래곤즈의 홈구장, 나고야 돔. 선동렬 선수부터 현재의 이병규 선수까지 한국선수들과 인연이 많은 구단. 이병규 선수는 히로시마 구장에 이어 나고야 돔에서도 경기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인연이 잘 맞는지 공교롭게도 관람한 경기는 모두 홈런 포함 팀승리에 결정적 공헌을 했다.
나고야 돔으로의 접근은 역시 철도가 편리하다. 시영 지하철과 JR역의 두방면인데 JR쪽으로의 접근도로. 꽤 걸어야한다.
나고야 돔의 모습. 돔 구장 옆에는 일본의 대형 슈퍼마켓인 이온(AEON인데 이온이라고 읽는다)이 위치해있어 시합이 없는 때라도 인구의 유동성이 꽤 있는 편인듯하다.
코알라를 왜 마스코트로 쓴것인지.. 추측컨데 용은 마스코트로 별로 귀엽질 않아 임팩트가 약하다보니 코알라를 추가한 것으로 보인다.
작년 일본 시리즈 우승은 주니치 드래곤즈. 센트럴 리그 우승은 요미우리 자이언츠다.
도요타 도시라고도 할 수 있는 나고야 답게 대형 주차장이 준비되어 있다.
시영 지하철을 이용할 경우 나고야 돔으로 들어가는 통로 쪽에서 바라본 나고야 돔 전경.
나고야 돔 옆에 위치한 시민 공영 시설들. 갤러리, 도서관등 문화시설이 위치해 있다.
시영 지하철을 이용할 경우 지하철 통로에서 만날 수 있는 주니치 구단 홍보물들.
1936년 창단. 올해로 73년의 역사를 이어가고 있다.
1997년 나고야 돔 완성. 선동렬 세이브 왕.
삼손 이상훈.
나고야의 태양. 선동렬
한때 천재라 불리웠던 이종범 선수의 앳된 모습.
돔 구장내 기념품 샵.
돔 구장 건너편. 이온내 마련되있는 기념품샵. 돔구장내의 샵보다 많은 사람들이 몰린다.
선동렬 선수가 세이브 왕에 오를 당시 최다 탈삼진왕을 차지했었던 야마모토 선수의 200승을 기념하는 기념품들.
드래곤즈는 키티와 계약을 맺어 다른 구단기념품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주니치만의 레어 아이템.
여성팬들을 위한 기념품들도 다수 구비.
2008년도 라인업이 새겨진 머그컵. 이병규 선수의 이름이 보인다.
어쩐지 그리운... 왕년의 엠비시 청룡의 마스코트...이제보니 똑같았네...
 7번 이병규 핸드폰 스트랩.

.. 다음편은 나고야 돔내 구경..


도꾜돔 내에 위치한 일본 야구 박물관의 간판
한층 밑으로 연결되어있다.
월드컵 야구 대회 우승을 기념하는 전시물이 맨앞에 놓여져 있다.
2007년 일본시리즈 주니치대 니혼햄의 경기 스코어 북
일본시리즈 우승컵과 함께 각팀의 현재 유니폼.
일본 프로야구를 대표한 명 선수들의 모습.


한신 타이거즈의 전신 오사카 타이거즈의 선전 포스터.


일본 프로야구의 전설인 왕정치(오 사다하루)가 타격연습을 위해 연습했었다는 일본도.
한신 타이거즈의 4번타자 가네모토 토모아키(한국명 김지헌)의 904시합 풀이닝 연속출전기록을 기념하는 부스. 아직도 기록을 이어가고 있다. 세계신기록.
요미우리 자이언츠와 니시테츠 라이온즈(현재의 세이부 라이온즈)의 시합 포스터.

초창기 야구장비.


베이브 루스가 포함된 미국 올스타팀의 미일 경기 포스터. 야구왕 베이브 루스라고 적혀있다.

일본 프로야구 역대 명승부 경기를 관람할 수 있는 시어터 룸.
소년야구부터 프로야구에 이르기까지 일본 야구 전반의 상황을 알아볼 수 있게 꾸며진 부스.
코나미컵 소개 부스. 작년 에스케이 와이번즈의 모습이 보인다.
82년 한국 프로야구 올스타 기념구가 전시 되있다....놀라웠다..
일본 프로야구 명예의 전당 입구. 거대한 사인공이 입구에 있다.

일본 프로야구의 전설적인 투수 중 한명인 가네다 마사이치(한국명 김정일).

새롭게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선수 두명의 모습과 기념물들.
신세기 특별표장. 일본에 야구를 심고 국민적 스포츠로 거듭나게 공헌한 인물들을 기념해서 명예의 전당에 올려놓고 있다.



현재 일본 프로야구의 각종 데이터를 검색할 수 있는 코너.
야구경기에 대한 이해를 돕기위한 부스도 마련되어있다.
일본에 온적이 있었던 시카고 화이트 삭스의 당시 유니폼.
야구공. 맨 왼쪽의 붉은 점에서 3단계의 과정을 더 거친후 오른쪽의 야구공이 된다.
2002년 도꾜돔. 마쓰이 히데키의 타구가 구장에서 사라진 사건이 있었다. 도꾜돔 구장의 천정부분의 틈으로 들어간 것인데 백스크린 위쪽의 전광판 뒤쪽에서 찾아냈다. 사건 당시의 공. 마쓰이의 사인이 들어있다.
타격체험.
자료실. 자유롭게 열람할 수 있다.

한국 프로야구 연감과 각 구단의 구단 소개 팜플렛등 야구관련 자료가 모아져있다. 양은 그닥 많은 편은 아니었다.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의 홈 구장.
도꾜 이케부쿠로에서 세이부 이케부쿠로선을 타고 약 20분정도면 도착할 수 있다.
문제는 도착했을때 숙소에서 충전시켰었던 배터리를 카메라에 넣고 나오는걸 깜빡했었다는 것.
덕분에 핸드폰 카메라를 사용할 수 있었던 기회. 소프트뱅크의 삼성 핸드폰 709SC. 200만 화소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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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찰구를 빠져나오면 정면으로 돔구장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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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 12시경. 저녁 경기를 위해 구장 정리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출입은 물론 안됐으며, 아쉬운 것은 보통 구장들 마다 있는 종합 안내소도 없이 덜렁 매표소 창구 하나만 운영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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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단 30년을 맞은 세이부 라이온즈. 정말 단순히 지붕만 얹은 돔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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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시설 안내도. 붉은색은 테니스 코트, 푸른색은 스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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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키장과 세이부관련 상품을 파는 샵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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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프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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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습장. 연습을 보러 온 사람들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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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구조의 돔구장으로 최대한 경제적인 면을 고려한 듯한 느낌을 받았다.  애써 찾아오지 않으면 안되는 위치이다보니 야구시즌이 아닌 겨울에 수익을 내기위해 스키장도 설치한 것을 알 수 있었는데. 마쓰자카가 보스톤으로 가면서 받은 그 거액이 세이부 라이온즈에게는 단비와 같았으리라..
후쿠오카는 현재 소프트뱅크 호크스의 홈구장인 야후!돔이 있는 규슈 최대의 도시. 원래는 일본 슈퍼마켓 체인기업인 다이에가 모기업이었으나 일본 야후!를 갖고 있는 소프트뱅크가 인수하면서 홈구장도 야후!돔으로 바뀌었다. 후쿠오카 항구 지역에 위치해있어 시내에서 좀 떨어져있지만 넓은 주차공간과 함께 주변에 리조트, 해수욕장, 테마파크형 쇼핑상가까지 마련되있다. 마치 메이저리그 구장에 온듯한 느낌을 받았다. 돔투어 프로그램도 마련되어있어 덕아웃등 뿐만 아니라 불펜까지 구장내 모든 시설을 돌아볼 수 있다.(이날은 이벤트일정으로 인해 투어프로그램이 실시되지 않아 아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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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았던 날. 후쿠오카 야후!돔은 개폐식 돔구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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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벤트 일정으로 인해 돔구장 시설 관람은 할 수 없었지만 마침 소년야구대회 결승전이 열려서 구장내에 들어가 볼 수 있었다. 들어갔을때는 이미 경기는 끝나고 시상식이 진행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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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구 일심(一球一心)이란 글귀를 새긴 아줌마 응원단. 단순히 응원만이 아닌 적극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는 최고의 서포터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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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라운드와 가장 가까운 좌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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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터백 뒤의 전광판도 역시 수준급. 펜스길이도 꽤 큰 구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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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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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비 중계를 위한 시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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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호크스 마스코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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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장은 바다와 인접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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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장 주변의 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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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신인 다이에 호크스 당시의 마스코트. 독수리가 아닌 닭같은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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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호크스 선수들의 손모양을 그대로 본떠 만든 조형물들. 악수를 청하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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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승기원의 보살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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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L 리조트와 돔구장은 연결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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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팬들을 위한 상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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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드락 카페, 리바이스 키즈, 갭, 영화관등이 있는 돔구장 앞의 호크스 타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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돔구장 투어 프로그램 안내 전단지. 스탠다드와 스페샬 코스로 나뉜다. 불펜, 락커룸등 구장내 시설을 관람할 수 있다. 스탠다드는 1000엔, 스페샬 코스는 2000엔. (성인기준, 어린이는 반가격) 참가하지 못해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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